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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05. 힌두교사원ㅣ앙코르와트(고대 크메르)

그랜마_퀼트 2006. 8. 14. 21:21
앙코르사원(고대 크메르)


고대 크메르 왕국(캄보디아)의 앙코르 사원으로 대사원의 한 신성한 홀에서는 부처상이 즐비하게 놓여 있다. 이 사원은 원래 힌두교 사원이었다. 이 부처상들은 각기 다양한 시대를 보여주는 것들로 섞여 있다


빡쎄이 참끄롱 사원, 쉬바신 신전

앙코르 톰 남문 (Angkor Thom)

 

앙코르 톰 남문 (Angkor Thom) 입구 불상들

 


앙코르톰 왕궁

 


앙코르톰 왕궁

 

앙코르 시대의 마지막 도읍이 였고 앙코르는 ‘사원’, 톰은 ‘크다’ 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며 커라란 도시라는 성곽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이곳 안에는 왕궁, 종교사원, 관청건물이 있었던 앙코르 제국의 중심 이였고 앙코르 톰은 동시대의 유럽의 도시와 비교해도 어떠한 도시보다 큰 도시였다. 앙코르 톰 남문은 힌두교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한 소우주 그리고 천상계와 인간계의 경계에 서 있다고 보면 된다. 남문의 입구는 고푸라 라고 하는데 높이는 23m 이고 코벌링 이라고 말하는 유사아치형으로 설계가 되었으며, 관음보살상(아발로키테스바라) 혹은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 한다. 바이욘 사원은 하늘과 땅의 연결을 상징하며, 앙코르 톰을 둘러싼 성곽은 우주를 둘러싼 벽, 혹은 메루산을 둘러싼 산맥을 상징하며 지금 말라버린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하고 있다

 


바이욘 사원,  자야바르만 7세때 세워진 불교사원 

 

바이욘은 앙코르 톰의 동소남북 각 대문에서 1.3Km 지점에 위치한 가장 중심에 있는 사원으로 왕이 신봉하는 관음보살상이 54개 사면불은 총216개나 조각이 되어 있는 사원이다

 


바이욘 사원, 바이욘의 얼굴상이 보인다


사면불의 얼굴상은 2~2.5m이며 머리에는 연꽃 모양으로 장식하고 있으며 곳곳에 부처의 부조로 조각이 되어 자야바르만 7세 때 불교를 장려하려 만들어진 사원임을 알 수 있다. 중앙 탑의 높이는 64m이고 중앙 탑은 힌두교의 우주론에 근거한 우주의 중심 메루산(수미산)을 형상화 한 것이다

 


바이욘 사원, 바이욘의 얼굴상이 보인다

 


바이욘 사원 부조

 


바이욘 사원 부조

 


바이욘 사원 부조

 


바이욘 사원 부조, 압사라의 춤

 


바이욘 사원 부조, 압사라의 춤

 


쁘리아 칸(Preah Khan) 사원

 


쁘리아 칸(Preah Khan) 사원

 


쁘리아 칸(Preah Khan) 사원

 


니악 뽀안(Neak Pean), 12세기 후반에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건축

 


니악 뽀안(Neak Pean)

 


동메본, 10세기 중반 라젠드라바르만 2세가 부모를 위해 건축한 사원

 


동메본

 


쁘레룹(PreRup),  죽은 육신의 그림자(화장한 후에 나오는 재)를 뜻한다

 


쁘레룹(PreRup),  죽은 육신의 그림자(화장한 후에 나오는 재)를 뜻한다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사원

 


반띠아이 쓰레이(Banteay Srei) 사원

 


톰마논(Thommanon), 11세기말-12세기초 수리야바르만 2세에 의해 건축된 사각형의 사원

 


차우 싸이 떼보다 사원

 


따께우(Ta Keo) 사원

 


따쁘롬(Ta Prhom) 사원, 12C중반-13C초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건축

 


따쁘롬(Ta Prhom) 사원

 

앙코르 톰 밖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서 헌정된 불교사원이다. 사원은 거의 붕괴되었고 스퐁(Spoan)나무가 사원을 휘감고 있고 발견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원이기도 하다

 

 

앙코르유적

 

 

세계 최대의 종교건축물인 앙코르 유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60년이다. 희귀 동식물을 조사하던 프랑스 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이 유적이 알려지자 서구는 경악했다. 캄보디아인이 건설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만든 것이다" "로마인의 솜씨다" "중국 유대인들의 작품이다"는 의견이 속출했다. 놀랍게도 20세기 들어서도 이 설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캄보디아인을 우습게 보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 유적은 9세기부터 600년 간 이어져 왔던 앙코르 왕조의 도성. 사원을 포함하여 910개의 유적은 앙코르 톰, 앙코르와트로 대분된다. 앙코르 톰 유적의 특색은 불교와 힌두교가 혼합돼 있다는 점과 사원 회랑을 장식한 조각이 모두 고대 인도 서사시라는 점이다.  13세기 중국인 주달관은 그의 캄보디아 체류기인 <진랍풍토기>에서 '왕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밤마다 여자로 변신한 머리가 아홉인 뱀의 신과 동침을 해야 한다. 하루라도 거르면 재앙이 온다고 믿는다'고 쓰고 있다.   힌두교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건축된 것이기 때문에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첨탑은 힌두교의 거룩한 산인 메일을, 회랑은 육지와 산맥, 주변의 헤자는 바다를 표현한 것이라고. 앙코르와트 남동쪽에 위치한 뱅그로사원은 동지 때 일출과 일몰을 잇는 직선상에 배치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앙코르와트가 서쪽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해가 지는 서쪽은 불교나 힌두교 모두 '죽음의 방향'으로 보는데도 '왕궁'이 굳이 서쪽을 향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이 '왕궁'이 실은 앙코르 유적의 건설자인 스루야바르만 2세의 영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이처럼 뛰어난 건축물을 남긴 왕조가 하루아침에 모래성 무너지듯 멸망한 것이나, 이 건축물의 도면 하나 남기지 않은 점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앙코르와트 사원

 


앙코르와트 사원

 


앙코르와트 사원

 


중앙탑 전경

 


앙코르와트 중앙신전

 


앙코르와트 사원(위에서 본)

 


 

 


 


앙코르와트 정문 회랑 압사라 부조

 


앙코르와트 정문 회랑 압사라 부조

 


자연부조

 


쿠룩세트라 전투 부조

 


하누만 신 부조

 


부조, 인도신화 라마야나(서유기)

 


인드라신, 우유바다젖기

 


지옥도

 

앙코르와트

 

앙코르라는 단어는 왕성함을 의미하며 와트는 사원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  한때 동남아를 지배했던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 왕조가 12세기 초에 건립한 사원이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이나 왕족이 죽으면 그들의 신과 같아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왕들은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다. 앙코르와트도 앙코르 왕조의 전성기를 이룩한 수리아바르만 2세가 브라만교 주신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해 건립한 거대한 힌두교 사원이다. 세계의 중심으로 신들의 자리를 뜻하는 수미산을 돌로 정확하게 쌓아 놓았으며, 높이가 59m에 이르는 중앙 사원탑의 끝에서 삼중으로 둘러싼 사각탑 끝을 선으로 연결해 보면 사각뿔의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앙코르유적

 

세계 최대의 종교건축물인 앙코르 유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860년이다. 희귀 동식물을 조사하던 프랑스 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 이 유적이 알려지자 서구는 경악했다. 캄보디아인이 건설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알렉산더 대왕이 만든 것이다" "로마인의 솜씨다" "중국 유대인들의 작품이다"는 의견이 속출했다. 놀랍게도 20세기 들어서도 이 설을 믿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캄보디아인을 우습게 보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 유적은 9세기부터 600년 간 이어져 왔던 앙코르 왕조의 도성. 사원을 포함하여 910개의 유적은 앙코르 톰, 앙코르와트로 대분된다. 앙코르 톰 유적의 특색은 불교와 힌두교가 혼합돼 있다는 점과 사원 회랑을 장식한 조각이 모두 고대 인도 서사시라는 점이다.  13세기 중국인 주달관은 그의 캄보디아 체류기인 <진랍풍토기>에서 '왕은 왕국의 번영을 위해 밤마다 여자로 변신한 머리가 아홉인 뱀의 신과 동침을 해야 한다. 하루라도 거르면 재앙이 온다고 믿는다'고 쓰고 있다.  힌두교의 우주관을 바탕으로 건축된 것이기 때문에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첨탑은 힌두교의 거룩한 산인 메일을, 회랑은 육지와 산맥, 주변의 헤자는 바다를 표현한 것이라고. 앙코르와트 남동쪽에 위치한 뱅그로사원은 동지 때 일출과 일몰을 잇는 직선상에 배치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앙코르와트가 서쪽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해가 지는 서쪽은 불교나 힌두교 모두 '죽음의 방향'으로 보는데도 '왕궁'이 굳이 서쪽을 향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이 '왕궁'이 실은 앙코르 유적의 건설자인 스루야바르만 2세의 영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이처럼 뛰어난 건축물을 남긴 왕조가 하루아침에 모래성 무너지듯 멸망한 것이나, 이 건축물의 도면 하나 남기지 않은 점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zoomlov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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